마음의 완악함

2017.10.08 16:47

admin 조회 수:9

작성일 2017-10-08 

완악함으로 해석된 히브리어 Sheriyruwth 쉐리루스는 대부분의 영어 번역에서 stubbornness 라고 번역되었습니다. 하지만, 예레미야는 성경의 다른 곳에서 번역된 ‘완고하다’는 히브리 단어와 다른 단어입니다. 이 단어의 의미는 상상- imagination 입니다. 직역을 하면 네 마음의 완악함을 따랐다가 아니라 “네 마음의 상상을 따랐다”입니다. 그리고 이것이 우상의 본질입니다. 우상은 허구입니다. 인간이 만든 상상-거짓입니다. 우상숭배는 하나님의 주인 되심을 거부하는 것에서 바로의 완악한 마음과 본질상 같습니다. 하지만, 쉐리루스는 훨씬 교묘한 완고함입니다.  

신앙의 옷을 입고, 율법의 행위로 때로는 말씀으로 자신을 치장하고 있는 완고함입니다. 신앙은 이런 거야. 이런 것이 바로 제대로 된 신앙이고 신앙생활이요. 이게 복음이지. 이런 교회가 좋은 교회야. 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깨닫고, 수종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마음의 상상, 스스로 공들여 만들어 놓은 허구를 믿고 주장하는 겁니다.  

고난 앞에 이런 질문을 합니다. 하나님 어떻게 저에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습니까? 저 모태신앙이에요. 제가 주일을 빠진 적이 있습니까? 기도 했잖아요. 아니 성경을 모릅니까? 신앙고백이 없습니까? 진지함이 모자랍니까? 봉사를 하지 않았습니까? 십일조를 하지 않았습니까? 도대체 왜 저에게 이런 재앙이 일어나는 겁니까? 하늘을 향한 삿대질이 있습니다.  

14절, “그 마음의 완악함을 따라 but have stubbornly followed their hearts 그 조상들이 자기에게 가르친 바알들을 따랐음이라” and have gone after the Baals as their fathers taught them. 너는 한 번도 내 마음을 따른 적이 없다. 너 마음의 상상, 너의 아비가 만든 헛된 우상을 따랐기 때문이다.  

예레비야를 통해 심판하시는 마음이 완고한 사람들은 이스라엘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라 자기 마음의 상상, 자기생각에 속으며 살던 그리스도인들입니다. 자기잘못을 모르고, 아니 자기가 옳다고 여기는 사람의 특징이 있습니다. 뻔뻔함입니다. 죄인을 위해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은 이러한 뻔뻔함에 너무나 화가 나셨습니다. 마가복음 3장 5절, “그들의 마음이 완악함을 탄식하사 노하심으로 그들을 둘러보시고 그 사람에게 이르시되 네 손을 내밀라 하시니 내밀매 그 손이 회복되었더라. 안식일에 손이 마른 사람을 고치시는 예수님을 정죄하던 바리새인을 향해 보이신 마음입니다.  

바리새인들을 보시고 탄식하고 노하셨습니다. 그런 예수님의 말씀을 바리새인들은 받아들일 수 없었습니다. 6절, “바리새인들이 나가서 곧 헤롯당과 함께 어떻게 하여 예수를 죽일까 의논하느라” 하나님의 아들 예수를 죽일 만큼 강퍅한 이 마음의 근원은 무엇인가요? 그들의 종교적 열심이 그들을 속이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안식일에 일하지 말라고 하셨죠. 하지만, 그 율법자체 보다도 하나님의 마음이 더 중요합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라 그들 마음의 상상을 따라 스스로를 속이고 있습니다. 자기 확신에 차서 예수님을 대적합니다. 죽이려 하고 결국 십자가에 못 박아 죽입니다.십니다.